# 밀리의 서재에서 열심히 밀던 건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어플 킬 때마다 나오는 책이길래 읽어보았다. 저자는 알렉스 안도릴로 희한하게 라르스 케플레르로 활동하는 스웨덴 작가 부부 '알렉산드라 코엘료 안도릴'과 '알렉산데르 안도릴'이 새롭게 합작하며 내놓은 필명이라고 한다. 작가 개인이 필명을 따로 쓰는 경우는 자주 봤지만 작가 '부부'가, 그것도 두 번째 필명을 만들어 내놓은 소설이라는 게 신기했다. (물론 작품 퀄리티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과거에 같은 스웨덴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너무 재밌게 읽었어서 더욱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 책은 '율리아 스타르크'라는 사립탐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책 표지에도 대문짝만하게 쓰인 이름으로,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처럼 탐정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물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엔딩에서도 다음 작품에 대한 떡밥을 던지며 끝난다.) 워낙 흥행한 책이고 넷플릭스에서 제작도 확정되었다고 하니 시리즈는 한동안 유지될 듯하다. 쨌든 율리아 스타르크는 어릴 적 비행기 추락사고로 천애고아가 된 후 엄청난 PTSD를 가진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얼굴에는 흉터가 남아있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야 하며, 전남편인 시드니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공황상태가 되어버린다. 이혼한 지 7년가량 된 전남편인 시드니는 형사로 이번 작품 내내 율리아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데, 아직 시드니를 완전히 잊지 못한 율리아가 중간중간 시드니에 대한 감정에 대해 기대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는 아직 큰 비중 없는 내용이었지만,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진전을 시키지 않을까 싶다.
# 사건은 한풀 꺾인 임업 재벌기업인 '만하임 그룹'의 현 경영자인 '페르 귄터'의 핸드폰에서 시작된다. 어느 늦은 밤 율리아를 찾아온 페르 귄터는 자기가 술에 취해 기억을 잃고 있던 동안 자신의 핸드폰에 찍힌 끔찍한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에 대해 수사를 해달라고 의뢰한다. 사진 속 사람은 누구인지, 이 사람이 죽은건지, 죽었다면 누가 죽였는지,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등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설령 범인이 본인이라고 해도 가감 없이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한 것이다. 율리아는 수사 관련 도움도 받고, 그의 마음도 떠보기 위해 형사 시드니와 함께 모트 가문의 대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 이후의 스토리는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문법을 착실히 따라가는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고, 인물들의 알리바이를 파해치며, 중간중간 새로운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결국 관련 등장인물 모두를 모은 '붉은 방'에서 율리아가 진실을 밝히면서 끝이 난다. 가문 내에서 이어져 온 비극이 곪고 곪아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한 결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추리의 반전이나 이 책의 제목인 '아이가 없는 집'에 대한 진실(이유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 같다)의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뭔가 이런저런 떡밥을 열심히 던지다가 막판에 허겁지겁 회수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뭔가 좀 더 깊고 어두운 진실을 기대했었는데...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 '밀레니엄' 소설을 읽었을 때도 느꼈던 바지만 '아이가 없는 집'에서도 작품의 분위기가 뭔가 서늘하고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계속 읽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따뜻한 온기가 있고, 셜록 홈즈는 뭔가 박진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스웨덴 소설들은 다 이런 느낌인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하여튼 이런 분위기가 추리소설에는 잘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차가운 분위기에 깊게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었다.
# 결말이 조금 김새긴 했어도 만약 다음 권이 밀리의 서재로 올라오게 된다면 또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도 기대가 되지만, 나는 이 기회에 '밀레니엄' 시리즈 2편도 읽어볼 계획이다. 1편을 정말 재밌게 읽었음에도 워낙 장편소설이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게 꽤나 부담이었는데 이번 휴직기간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소설이 주는 몰입감은 좋은 편이니 북유럽 쪽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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