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내용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빠져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실 이 책 이전에 '백야행'도 다 읽었으나, 백야행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뭔가 더 마음의 정리가 되고 나서 써야 할 것 같아 미루고 있다. (그만큼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책이다.) '비밀'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세작으로, 등단 이후 14년 만에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이 추리소설인지가 의문이지만, 상을 받을 만큼 좋은 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소설 속에서 요즘은 집에서 거의 안 쓰는 유선 전화기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이 책이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새삼 실감이 났었다.
# 이 소설은 주인공 헤이스케의 부인인 나오코, 그리고 딸인 모나미가 탄 스키버스가 추락하는 사고가 나 둘 다 중태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나오코는 모나미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딸을 막느라 혼수상태였고, 모나미는 덕분에 몸은 멀쩡했으나 산소부족으로 식물인간이 될 위험에 처한다. 이때, 간신히 의식을 찾은 나오코가 마지막으로 모나미의 손을 잡으면서 숨을 거둔다. 슬픔 속에 장례를 치른 후, 헤이스케가 모나미의 병실에서 슬픔을 토해내자 모나미가 극적으로 깨어나는데, 거짓말처럼 모나미의 육체에 나오코의 영혼이 들어오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헤이스케는 몸은 딸이지만 정신은 나오코인, 딸도 아내도 아닌 그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그 아이의 몸을 빼앗았나 봐, 그 아이의 영혼을 밀쳐내고..."
"아니, 나오코가 모나미의 몸을 구해준 거야."
- 헤이스케와 나오코의 대화
# 초중반에는 주로 나오코가 모나미의 삶의 적응하는 이야기와, 버스사고에 대한 보상협의회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버스 운전기사였던 가지카와의 가족 이야기도 나오고, 헤이스케가 잠시 연정을 품은 나오코의 담임 하시모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결말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가는 소재로써 사용한다. 그러나 나오코가 고등학생이 되고, 서서히 '헤이스케의 아내'가 아닌 '헤이스케의 딸'인 모나미의 삶에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가 어긋난다.
# 그 갈등의 파국은 나오코를 좋아하는 테니스부 선배인 소마의 등장으로 일어난다. 크리스마스 이브, 소마는 이전부터 여러 번 고백을 했던 나오코에게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서 데이트 신청을 했고, 나오코는 주저하다 결국 소마를 보러 간다. 그러나 나오코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극에 달했던 헤이스케는 그녀의 전화에 도청장치를 심어둔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고, 둘의 만남 현장에 불쑥 나타나 나오코를 억지로 끌고 온다.
"나와 우리 딸이 사는 세계와 네가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사귄다고 해도 잘될 수가 없어."
- 헤이스케, 소마에게서 나오코를 낚아챈 후
# 오늘은 이전에 썼던 독후감과 달리 소설 내용 전반에 대한 요약을 해보려고 했는데, 요약을 했음에도 분량이 꽤나 길게 나와 당황스럽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거의 소설의 80%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의 20%가 클라이막스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정말 많다. 글이 너무 길어봐야, 특히 나같이 중간에 사진 같은 것도 없이 줄글로 쭉 쓰는 타입은 지루하기만 할 뿐이라 일단 중간에 한번 끊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딸의 몸에 아내의 영혼이 들어온다라. 어디 코미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설정이지만,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어떤 결말을 향해갈지 잘 예측이 되지 않았다. 중반까지만 해도 나오코는 그저 자신의 꿈을 위해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고, 오히려 헤이스케와 가지카와 가족(전처 말고 현 가족인 세이코와 이쓰미) 간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의아했다. 버스사고 발생과 관련하여 가지카와가 큰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말까지 읽고 난 후, 가지카와가 헤이스케에게 아주 큰 가르침을 주긴 했지만 가지카와 가족의 이야기를 저 정도로 많이 풀어놓은 건 그냥 맥거핀이었던 것 같다.
# 나오코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생기는 갈등에 대해서는 나도 헤이스케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갔다. 내 딸이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사실 그 내면이 나의 아내라면 얼마나 더 큰 상실감과 불안감이 생길까. 나오코의 방을 뒤지거나 심지어 도청장치까지 설치하는 헤이스케의 행동이 옳았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안 그러고 배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앞에 언급했듯이 이 책의 백미는 후반에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기 때문에 내일 마저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나오코와 모나미, 그리고 헤이스케의 기묘한 동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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