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한창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만 하고 실제로 읽지는 못했는데, 오랜만에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보니까 이른바 '몰입 시리즈'의 시작인 '몰입'이라는 책이 2007년에 최초로 출간되고 관련하여 정말 많은 책들이 나왔더라. '몰입 두 번째 이야기', '몰입 합본판', '몰입 확장판'까지.. 내가 본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몰입 확장판으로 이전 버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 읽고 나서 다른 버전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 이 책이 최초로 출간됐을 2007년도에는 이 책이 혁명적이었을 수 있겠으나, 자기계발 열풍이 불면서 워낙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인 2024년을 기준으로는 크게 새롭고 이른바 Mind-blowing하는 내용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나 역시 처음부터 07년도에 발간된 책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내용을 기대하진 않았고,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일종의 고전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 다양한 자기계발서들의 문법이라 할 수 있는 '성공으로 이끄는 개념 소개 - 각종 근거 - 적용 사례'를 만든 선구자적인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이 책은 저자인 황농문 박사가 몰입을 통해 몇십 년간 이어진 난제를 해결하여 큰 성취를 얻은 이후 자신의 성공의 원동력이 된 '몰입'에 대해 깊게 연구하여 '그 개념을 확립하고 -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들을 찾아내며 - 몰입을 통해 성취를 일군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내용의 자기계발서이다. 저자가 말하는 몰입은 단순히 1~2시간 동안 폰을 멀리하고 책에만 몰두하는 정도의 몰입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몰입은 '약한' 몰입으로, 저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강한' 몰입과는 그 강도의 차이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진짜배기 강한 몰입이란 1달이고 2달이고 문제를 붙잡고 계속 생각하면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곱씹어보는 것이다.
# 이 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슬로씽킹(Slowthinking)이다. 자기의 온 마음과 정신을 바쳐서, 만화에서 표현하는 것마냥 머리에 불이 나는 듯이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명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완된 상태에서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간의 몰입에 지치지 않는 기초가 된다. 두 번째는 선잠이다. 슬로씽킹 중에 선잠이 와도 이를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깨어있는 상태에서 고민하던 문제를 선잠에서도 고민하게 되며, 이때 장기기억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숙면과 운동이다. 아무리 슬로씽킹을 한다고 해도 하루종일 하나의 문제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할 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 운동을 통해 뇌를 리프레쉬하고, 숙면을 통해 뇌를 쉬어주면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장기적인 몰입을 유지하다 보면 이 순간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감이 고양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결국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몰입인 것이다.
# 대한민국 자기계발서의 고전과도 같은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앞으로 자기계발서를 읽는 비중을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 20년간 자기계발서의 문법이 이 책에서 거의 벗어나지도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결국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의 법칙도 거의 차이가 없구나라는 게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핵심은 아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온 힘을 다하여 몰두하라."
# 누구나 알고있는 저 문장을 알려주기 위해 그 많은 서적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기계발서는 일종의 '성공포르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성공을 하고 싶지만 실천할 의지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론과 성공사례를 보면서 '아 나도 이걸 보면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겠지' 하는 자위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성공에 다가가기 위한 핵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새로운 게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남들의 성공을 훔쳐보지 말고 나의 성공을 만들어나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물론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자체가 다 시간낭비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배울 점 한 가지는 꼭 챙겨가자는 마인드를 갖고 본다. '역행자' 역시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그 책을 읽고 1일 1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면서 이 블로그가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 아닌가. '몰입'에서는 조금 웃기지만 자녀의 공부교육에 대한 배움을 많이 얻었다. 사람이 강한 몰입을 가장 연습하기 좋은 때가 청소년기라고 한다. 안 풀리는 수학문제 하나를 붙잡고 답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몰입하여 고민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감과 논리력까지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우리 아이 교육에 참고할 수 있도록 많이 하이라이트를 해두었다. 이런 식으로, 심지어 책의 원래 목적과 방향성이 달라도, 그 책을 통해서 뭔가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그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앞서 말했듯이 출판된 지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평소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새로운 내용이 없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요즘처럼 도파민 중독이 문제 되는 사회에서 이 '몰입'이라는 개념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다시금 회자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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