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아재의 독후감] 녹나무의 파수꾼, 녹나무의 여신 / 히가시노 게이고

by Manoh 2024. 10. 23.
반응형

 

#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의 유명 작가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매년 2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는 왕성한 현역으로, 이번에 읽은 두 권의 책 역시 2020년대에 나온 작품들이다.

 

# 나 역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으로 처음 히가시노 게이고를 알게 되었다. 나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에르퀼 푸아로 등 정말 유명한 소설 정도만 읽었던 터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만의 새로운 문체에 푹 빠졌다. 이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관심이 많이 생겨 나름 여러 권을 읽어본 것 같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번에 밀리의 서재로 읽어봤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 술술 쉽게 읽히면서, 인간의 선한 내면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멋진 책이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녹나무의 여신'이라는 후속작이 작년에 나온 게 아닌가? 오늘 단숨에 읽어버리고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다.

'녹나무의 파수꾼', '녹나무의 여신' 표지. 멋진 녹나무의 자태와 표지의 색감이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 두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녹나무'이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멋지게 뻗어 난 20m 크기의 녹나무는 간절히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영험한 나무이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 녹나무의 비밀을 찾고 녹나무에 소원을 빌러 오는(기념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녹나무의 여신'은 녹나무를 주제로 하는 어린이 동화를 만들면서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레이토'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의문의 여인인 '치후네'의 도움을 받고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면서 두 작품에 걸쳐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도움만 받던 '레이토'가 후반에 다른 사람들의 염원을 실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걸 보면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죽을 때 뭔가 하나라도 내 것이 있으면 되니까요.

그게 돈이 아니어도 좋고, 집이나 땅 같은 대단한 재산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넝마 같은 옷 한 벌이라도, 고장난 시계 하나라도 상관없습니다.

왜냐면 태어났을 때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죽을 때 뭔가 하나라도 지니고 있다면 제가 이긴겁니다."

- '녹나무의 파수꾼', 레이토

 

# 또 하나의 핵심 소재는 '기억'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기억이 사라지는 인지장애 환자, 매일매일 전날의 기억이 사라지는 특이 증상의 소년 등...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많아진다. 결국 그들의 현재는 걱정과 불안으로만 가득 차게 된다.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메모하지만 어떤 때는 메모했다는 사실조차도 까먹어 버린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섣불리 괜찮다, 좋아질 거라고 격려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허한 격려보다 묵묵히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요리법을 까먹은 사람에게 다시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인터넷을 찾아가며 함께 요리를 만들어보는 게 더 큰 지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기억이 사라져도 괜찮은 하루하루, 기억이 사라져 감에도 행복한 현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미래 같은 건 필요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런 건 상관없다. 그런 건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 '녹나무의 여신', 모토야

 

#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모두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단순히 추리소설 작가로만 규정짓기에는 작품의 폭이 정말 넓다. (오히려 추리의 기민함과 참신함이 엄청나게 대단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짜 강점은 인간의 선한 마음에 대한 믿음을 흡입력 있는 문체로 독자에게 설득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나름의 사연이 있고, 소설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이 악의로 인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선의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리즈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사건들 중 악의로만 가득 찬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선한 내면을 지니고 있고, 결국은 그 선한 내면이 승리하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리고 특유의 쉽게 읽히는 문체가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선한 마음씨가 자신에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좋다.

 

# 이번 휴직기간 동안 새벽에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그래서 요즘 독후감이 자주 올라오고 있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많이 읽어보려고 한다. 새벽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소설 입문자,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를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