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11월 중순이 와이프 출산예정일이기 때문에 11월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선언을 해놓은 상태다. 안타깝게도(?) 11월 1일이 금요일이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불금에 한잔 하는 건 참기 힘들지 않은가. 금토일 주말을 앞두고 11월이 된다는 게 조금은 아깝긴 했지만, 뭔가 '다음 주'부터 술을 안 마시기로 하면 애초에 11월 1일을 시작일로 잡은 나 자신에게 패배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처음 다짐한 대로 11월 1일 내일부터 출산일까지 금주하는 걸로 마음을 완전히 잡았다.
# 11월 1일부터 절주가 아닌 완전 금주를 시작하면 최소 2주 넘게 금주를 하게 될 것 같다. 2주 간 술을 아예 안 마신다라? 감기에 걸려도 술을 쳐 마시는 나에게 보름의 금주는 뭔가 엄청난 도전처럼 들려오면서, 한편으로는 고작 보름 술 안 마시는걸 이 정도로 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 자신에게 연민 아닌 연민도 들었다. 답도 없이 술에 중독됐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어쨌거나 생각은 생각이고, 나는 행동하는 걸 멈춰서는 안 된다.
# 술을 안 마시는 날들을 만들면서 느끼게 된 사실은, 술을 마시는 것도 또 안 마시는 것도 일종의 관성인 것 같다는 점이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던 때는 술을 안 마시면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졌고 퇴근길에는 술 생각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었다.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셨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 감기도 걸리고 하면서 술을 안 마시는 날들이 늘어나자 확실히 '당연하게'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는 게 체감된다. 내가 특히나 반주를 못 참는 상황이 저녁식사 때 메뉴가 술안주로 딱인 메뉴가 나올 때이다. 예를 들어 삼겹살이나 김치찜이나 제육볶음이나... (근데 한편으로 또 생각해 보면 어떤 메뉴가 나한테 술안주로 안 어울리는 메뉴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더라. 이건 그냥 내가 알코올의존증이라는 의미인 것 아닐까.) 그럴 때는 같이 술 한잔을 곁들이지 않으면 뭔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하여튼 술 생각이 엄청 나서 결국 소주 한잔을 까게 되는 결말로 이어지더라.
#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게 느껴진다. 족발을 먹어도 술 없이 먹고, 치킨을 먹어도 술 없이 먹고, 두부김치를 먹어도 술 없이 맛있게 먹게 된다. 이전의 약간은 극단적인 술에 대한 의존이 확실히 줄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세상에 술 없이 먹으면 안 되는 메뉴가 어디 있겠는가. 막말로 회나 곱창 같은 음식들도 술 없이 먹는 사람들이 널렸다. 메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메뉴를 받아들이는 내 머릿속 회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 반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아성찰을 한 번씩 해보기를 추천한다. 이 메뉴는 술 없으면 안 되지~ 하지만 실제로는 술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술을 줄이거나 끊기를 결심했다면 반주를 줄이는 게 먼저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술 없이 밥을 잘 먹어오지 않았는가.
# 요약하자면, 술을 먹다 보면 술을 먹어야 하는 관성이 생겨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술을 곁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반대로 술을 안 먹는 관성을 만들면 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도 굳이 술을 찾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보름간 금주하는 도전은 이런 관성을 만들기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저녁마다 반주를 곁들이고, 먹는 메뉴마다 술이랑 같이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없앨 수 있는 11월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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