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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그것만이 내 세상 :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운...

by Manoh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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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포스터.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뇌에 장애가 있거나 손상을 입은 사람 중 극소수가 특정 분야에서 일반인보다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증상.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고 난 후 박정민의 또 다른 연기를 보기 위해 유튜브 쇼츠에서 많이 접해본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았다. 이병헌, 박정민, 한지민, 윤여정 등 걸출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였고, 그에 걸맞게 배우들의 연기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솔직히 전체적인 만듦새를 봤을 때는 아쉬움이 한가득인 영화였다.

 

 

# 이 영화는 김조하(이병헌)의 시점으로 그의 주변 세상과 심정의 변화를 차근차근 따라간다. 한물 간 전 웰터급 동양 챔피언인 조하는 30 후반의 나이에 전단지나 돌리거나, 가끔 젊은 선수 스파링 메이트를 해주면서 돈을 버는 '하류인생'을 사는 남자다. 우연하게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와 재회하고, 당장 살 곳이 없었던 그가 어머니께 당분간 신세 지려 집에 가보니 서번트 증후군인 동생 오진태(박정민)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조하와 진태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성장해 가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배우들이다.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100퍼센트 이해하고 완벽하게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외로 윤여정의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부산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조하와 와인 한 잔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여자의 일생도 참 힘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병헌의 푼수연기도 너무 좋았고, 주인집 모녀의 연기도 좋았으며, 조하의 친구로 나온 백현진의 감초연기도 은은하니 좋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인 박정민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 이 영화에서 가장 내가 이해가 안 된 인물은 조하와 진태의 친모인 주인숙(윤여정)이었다. 젊은 시절 남편에게 구타당하고 살해 협박을 받는 삶이 절대 버틸만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리고 혼자 자살하려는 무책임한 선택을 하려 했을까. 물론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중에 조하를 다시 만났을 때 최소한 그에게 모진 말을 해서는 안 됐지 않았을까. 다른 것보다 정말 황당했던 건, 조하가 극 중반에 진태의 똥을 치우느라 (이건 비유법이기도 하고, 직유법이기도 하다.) 진태의 복지관에도 못 가고 하루종일 경찰서에서 고생하고 돌아왔을 때 인숙의 반응이다. 조하가 처음으로 인숙 대신으로 진태를 복지관으로 데려다주며 생긴 돌발상황이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인숙이 조하를 비난하는 걸 봤을 때는 내가 다 화가 날 정도였다. (그리고는 조하가 화나서 떠나자마자 진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더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순서가 반대가 되었어야하지 않을까?) 자기도 조하를 버리고 도망갔으면서 어떻게 조하에게 사람이 덜 됐다느니 하는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 조하가 거기서 영원히 그 모자를 버리고 떠나갔어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씬이었다.

 

 

# 이처럼 이 영화의 문제는 각본과 연출이다. 초반의 개연성은 진짜 답도 없다. 나 역시 OTT를 통해 이 영화를 봤지만,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OTT로 우연히 이 작품을 틀었다면 초반 20분 안에 '이게 뭔 영화야'하면서 시청을 종료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전혀 가지 않는 스토리였다. 중후반도 사실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모자람을 배우들의 멋진 연기로 간신히 살려낸 영화였다. '서번트 증후군'과 피아노라는 두 개의 매력적인 메인 재료를 갖고 온갖 이상한 조미료를 뿌려대며 조잡하게 완성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캐릭터 설정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다. 조하는 왜 캐나다가 간다고 했다가 순식간에 돌아오는 건지, 한가율이나 주인숙의 급작스러운 심경변화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진태는 오히려 너무 감정변화에 대한 묘사가 없어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혼자 붕 뜬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그래서 이 영화를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를 본다고 장애인의 편견에 대한 새로운 환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주인숙 같은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영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영화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의 연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감상문을 쓴다. 특히 박정민의 연기에 빠져든 박정민 팬이라면 힘들어도 한번 볼 가치가 있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 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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