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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아재의 영화한편] 싱글맨 : 비주얼적으로 완벽한 영화

by Manoh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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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맨>은 내가 한창 수트에 관심있을 때 알게 된 영화였다. 주드 로가 주연으로 나온 <나를 책임져, 알피>를 보고 주드 로의 완벽한 수트핏에 반하게 되면서, 비슷하게 멋진 수트가 나오는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되었다. <싱글맨>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주인공인데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라인이 주는 멋진 수트핏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지더라. 영화 <킹스맨>이 나오기 전부터 나는 이미 그 배우의 미친 수트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싱글맨>은 그냥 콜린 퍼스의 수트핏이 나오는 영화로만 말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영화는 오랜시간 사랑해온 동성의 애인을 잃은 나이 지긋한 한 남자 '조지'의 어느 하루를 보여준다. 시대의 배경은 60년대로,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동성간의 사랑은 아직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 시절에 자기보다 한참 어린 남자인 '짐'과의 연애를 하는 '대학교수'는 당연히 세상에 당당할 수 없었고,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살아왔다. 어느 날 '짐'이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완전히 홀로 남게된 '조지'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오랜 친구인 '샬럿'과 저녁을 보내고, 또 매력적인 학생인 '케니'와의 일탈을 즐기기도 한다. 그 이후는 스포일러이기에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마음 속 호수에 돌이 하나 떨어진 것처럼 잔잔한 슬픔과 여운을 남기는 결말을 맺는다.

 

# 이 영화에 대해 꼭 말하고 싶은 첫번째는 감독의 표현방식이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디자이너 '톰 포드'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영화 내내 감독은 '조지'의 감정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내가 감명받았던 건 감독의 채도 조절이다. '조지'가 생기없이 '그저 살아갈 뿐'일 때(출근하거나, 사무실에 있거나, 은행에 들를 때) 화면의 채도는 낮아져 거의 흑백영화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젊은 학생들의 생기있는 노닥거림을 볼 때는 채도가 높아진다. 멋진 라틴계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가질 때도 채도가 높아진다. '짐'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할 때는 마치 눈 앞에 실재하는 것처럼 강렬하고 쨍한 채도가 된다. 이 채도의 변화는 '조지'의 내면에서 나오는 욕망, 사랑, 우정, 그리움 등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의미가 없어진 그에게 다시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해주는 '살고자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채도의 변화를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조지'의 감정변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식의 연출은 처음 봤는데, 비주얼적으로 너무 강렬하여 이후에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 꼭 말하고 싶은 두번째, 동명의 원작소설이다. <싱글맨>은 원래 1964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이다. 나도 영화만 보고 소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다가 우연히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싱글맨>을 보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주문을 하고 보게 되었다. 소설은 '조지' 내면을 좀 더 깊이 탐색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와 그걸 냉소하는 '조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반면에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너무 화려해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의 '조지'나 '짐' 그리고 '케니'는 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영화가 여러 면에서 좋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읽음으로써 '조지'의 삶과 마음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영화 <싱글맨>은 꼭 보기를 추천한다. 디자이너 출신 감독의 고급스러운 미장센과 멋진 주인공들은 비주얼적으로 완벽함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주었다. (이 영화로 나는 매튜 구드라는 배우를 처음 보게 됐는데, 말 그대로 비주얼 쇼크였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준 배우였다.) 그리고 PC적 요소 없이도 동성 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한 소설 원작의 각본도 비주얼에 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을 잃는 것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픈 일일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무심한 소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나에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살아가야 하겠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영영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상실은 그런 의무감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뜨릴수 있다. 결국 있을 때 잘하고, 있을 때 그 행복을 온전히 누려야만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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