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아이와 함께 먹을 볶음밥을 만들고 나는 곁들여 먹을 신라면 소컵에 물을 따르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다. 생전 나는 컵라면 소컵을 사서 먹은 적이 없었고 소컵은 주로 와이프가 먹는 용도로 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대컵보다 소컵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 좀 더 나아가자, 내가 어렸을 때는 안 먹었지만 나이가 먹은 요즘은 좋아하게 된 음식이 몇 개 떠오르더라. 어쩌다가 내 선호가 변한 것인지 스스로를 분석하는 글을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남겨본다.
1. 중국집 볶음밥
# 어렸을 때는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 먹는 일이 없었다. 무조건 짜장 아니면 짬뽕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조금씩 볶음밥을 자주 시켜 먹고 있다. 사실 단순히 중국요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면 vs 밥의 선호도 대결에서 어렸을 때는 항상 면이 이겼지만 이제 슬슬 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나이가 먹으면서 면이 소화가 잘 안 되서인 것 같다. 특히 짜장면은 기름진 밀가루 음식이라 그런지 먹고 나면 속이 영 더부룩해서 불편하니, 먹을 때는 맛있어도 먹고 나면 꼭 후회가 되더라. 그래서 옛날에는 백이면 백 짜장/짬뽕만 시켜 먹었지만 요즘은 5번 중 2번은 볶음밥을 시켜 먹는다. 물론 볶음밥도 너무 기름이 많으면 더부룩하지만, 밀가루와 기름으로 뒤덮인 짜장면보다는 훨씬 속이 편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볶음밥도 잘하는 집에서 먹으면 짜장보다 훨씬 맛있더라.)
2. 비비빅
# 단일 제품으로는 가장 극적으로 선호가 뒤집힌 제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렸을 땐 도대체 저걸 누가 먹는다고 파는 걸까?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나 같은 아재들이 이렇게 많이 사주니까 아직까지도 굳건히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비단 비비빅뿐만 아니라 나이가 먹으니 팥 관련 군것질에 대한 선호가 커지는 것 같다. 비슷한 궤로 연양갱 역시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다. 원래는 아침 일찍 운동하기 전에 당 충전용으로 하나씩 먹었는데, 어느 순간 달달하고 부드러운 양갱의 맛에 빠지게 되어 집에 꼭 한두 개씩은 쟁여놓는 간식이 되었다. 어렸을 때야 초코 같은 자극적이고 강렬한 단맛을 좋아했지만, 이제 나이를 먹으니 팥처럼 은은하고 질리지 않는 단맛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술 먹고 단 게 당길 때 초코보다는 비비빅이나 단팥빵, 연양갱 같은 간식이 꼭 그렇게 생각나더라.
3. 컵라면 소컵
# 이 시시껄렁한 글을 쓰게 된 계기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컵라면 하나만 따로 식사용으로 먹기보다는 메인 메뉴 먹고 좀 아쉽거나 국물이 필요할 때 곁들이는 사이드 메뉴로 익숙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사이드로 먹을 때도 나는 항상 큰 컵의 라면들을 먹어왔다. 옛날에는 새우탕이나 신라면 큰컵, 아니면 왕뚜껑을 즐겨 먹었다. 집에 있는 소컵은 먹어도 뭐 먹는 것 같지도 않고 아쉽기만 해서 나는 별로 먹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소컵이 딱 적당하네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요즘도 왕뚜껑은 즐겨 먹지만, 메인 식사에 가볍게 곁들여 먹기에는 소컵이 부담 없이 좋더라. 거기다가 이제는 라면에서 나오는 그 밀가루 향?이 점점 질려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면발이 상대적으로 굵은 봉지라면에서 좀 더 그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요즘은 봉지라면이 잘 생각이 안난다. 예전에는 매일 한 끼씩 라면을 먹어도 절대 질릴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참 신기하다. 확실히 짜장면도 그렇고 나이를 먹으니까 밀가루 면에 대한 부담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잘 안 먹게 되고, 먹어도 컵라면 소컵처럼 얇은 면으로 조금씩 먹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다.
4. 하얀 국물요리
# 어렸을 때는 무조건 빨간 국물을 좋아했다. 매운 거를 엄청 잘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골 같은 국물요리는 무조건 빨개야지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샤브샤브같은 하얀 국물요리는 솔직히 내 돈 주고 거의 사 먹은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 입맛이 변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는데, 우연하게 일식집에서 복지리를 먹었던 경험이었다. 하얀 국물이라 뭔 맛이나 있겠나 하는 걱정반, 그래도 복지리는 나름 고급음식 아니겠냐는 기대반으로 먹어봤다. 그리고 그때 하얀 국물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자극적이지는 않아도 너무나도 깊고 시원한 맛. 빨간 매운탕보다 훨씬 깔끔하고 담백해서 오히려 술이 더 술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전골집이 음식을 잘하는지 보려면 탕보다 지리를 시키라고 하지 않는가. 오로지 원재료의 감칠맛만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던 그때의 복지리를 먹었던 이후 하얀 국물요리에 대한 선호가 생기게 되었다. 복지리같이 비싼 건 자주 못 먹지만, 그래도 전골집이나 횟집에 갈 때 하얀 국물이 주력이면 주저없이 시키고 주력 메뉴인만큼 술과 곁들여 맛있게 먹고 온다. 맵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음식의 바운더리를 넓혀준 좋은 경험이었다.
# 글을 다 쓰고 보니 순수한 내 입맛의 변화보다는 소화능력이 안 좋아지면서 생긴 변화 같기도 하여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다 나이 먹으면서 나타는 순리인걸. 결국 나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나이 먹어가며 변화하는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저걸 왜 먹는지 이해 못 했던 것들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하니, 진짜 사람은 그 상황이 되어보기 전에는 절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여튼, 입맛이란 나이 먹어가며 자연스레 변화하는 것이니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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