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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금주일기] 2주 간의 완전금주 후기

by Manoh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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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2주 간의 완전금주는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다. 내 의지보다는 와이프의 출산이라는 큰 이벤트의 역할이 컸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어쨌거나 성공은 성공이니 꽤나 기분이 좋았고, 지금 이 글은 축하주를 한 잔 곁들이며 쓰고 있다. 2주 간 술을 안 마시면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풀어보려 한다.

 

# 솔직히 신체적인 변화는 크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2주가 사실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지만 보름밖에 안되는 기간 아닌가. 그래서인지 크게 몸이 개운해졌다던가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던가 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부차적인 효과?라고 볼 만한 이점이 있긴 했는데 바로 낮잠이 덜 몰려온다는 부분이었다. 나는 반주로 술을 자주 즐기는데, 특히 주말 점심에 술 한잔 곁들여서 밥을 먹는 걸 좋아한다. 저녁에 반주를 하면 밥 먹고 금방 또 애기 씻기고 재울 준비하고 해야 하니까 음주 후 알딸딸한 그 여운(?)을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점심에 반주를 곁들이면 아이도 그즈음 낮잠을 자니까 여유롭게 음주 후의 여운을 즐길 수가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답도 없는 알코올 의존증 같긴 하지만...)

 

# 그래서 점심에 반주로 한잔 한 후의 취기를 느끼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자연스레 낮잠으로 이어지더라. 낮잠이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술 마신 후의 낮잠은 평소보다 늘어지게 되고, 아무래도 먹고 금방 잠들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속이 많이 더부룩하다. 하지만 2주 간 금주했을 때는 주말에 낮잠을 자도 한 시간 안팎으로 깔끔하게 끊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어나서도 더부룩함 없이 개운하기만 해 '이게 진짜배기 낮잠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건 확실히 좋았던 것 같다.

 

# 중요한 건 정신적 부분의 변화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술에 대한 집착이 정말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기쁘면 술이 고프고, 힘들면 술이 고프고, 맛있는 걸 먹으면 술이 고파지는 등 그냥 알코올 의존증적으로 술을 찾았다. 술을 안 마시는 날들을 늘리면서 그런 집착이 조금 줄긴 했지만 이번에 금주를 하면서 훨씬 더 많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 꼭 술을 먹지 않아도 지금의 기분을 오롯이 즐길 수 있고, 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술을 곁들이는 게 무조건 더 음식 맛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술을 곁들여야 맛이 더 좋아지는 음식은 주로 기름진 음식인데, 회나 곱창 같은 음식 아니면 사실 그 정도로 술이 필요할 만큼 기름진 것도 별로 없다는 걸 느꼈다. 삼겹살도 술 없이 먹어도 맛만 좋더라.

 

# 또 하나는 술 취한 상태가 절대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좀 더 체감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만취하는 것만 아니라면 술 좀 먹고 알딸딸해지는 게 뭐가 나쁜 건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2주 간 금주를 하며 내 정신도 완전 멀쩡하게 있다 보니까 취한 상태 자체가 절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취하지 않아도 사람이 취하면 감정기복이 심해지지 않는가.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거나 머릿속 생각이 좀 더 과격해지고 충동적이게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가 달라지니까. 2주 간 금주하면서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가를 반추하다 보면 꼭 이 생각이 나더라. 혼자 마시고 혼자 난리치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함께 있다면 그 차이가 훨씬 중요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만취든 아니든 그냥 술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반주 느낌으로 소주를 한 병 마시지 말고 차라리 밥 다 먹고 잠깐의 여유시간이 있을 때 위스키를 조금 마시는 게 술을 '즐기는' 방법으로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위스키에 별 취미는 없지만 뭐 애당초 내가 소주를 맛있어서 마시는 것도 아니고, 걍 취하기 위해서 먹었으니까 별 차이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소주를 한 병 마시면 위스키 한 잔보다 훨씬 배부르고 취하기도 하고 별로 좋을게 없지 않는가. 위스키 한 잔 하면서 그 바이브를 즐기고, 적당히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음주가 아닐까?

 

# 금주일기를 쓰면서 음주에 대한 내 목표가 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술을 완전히 끊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당연히 알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술 한 잔 하는 게 내 몇 안되는 낙이었어서 그 재미없이 내가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번 2주 금주경험으로 술을 완전히 끊는 게 내게 멘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확실히 깨우치긴 했어도 솔직히 술 마실 때의 즐거움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지금도 술 한잔 하면서 이 글을 쓰는데 이 알딸딸한 기분은 그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분이긴 하다. 무조건 건강만을 챙기는 삶도 재미없지 않은가. 하여튼 그전에 매일같이 술 마시는 삶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지금의 궤도를 잘 유지하면서 내 목표를 어떻게 해야할지 좀 더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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